[Update] M14 소총의 개발사 | m14 소총 – Pickpeup

m14 소총: คุณกำลังดูกระ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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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M14 소총의 개발사

2차대전 후 미군의 첫 제식소총

새로운 소총의 필요성

2차대전 후 미군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대형무기체계의 개발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어  핵무기가 전쟁의 수단으로 자리 잡고, 공군이 별도의 군종으로 분리가 되었으며, 제트항공기와 미사일은 점차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군은 막상 싸우는 방법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소련과의 대립이 시작되었지만 한동안 미국에게 직접 전쟁을 걸어올 가능성은 낮았고, 따라서 군은 직접적인 교전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소련에 대한 전략적 대비태세를 갖추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지상에서 벌어질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1940년부터 미 육군 병기단(Army Ordnance Corps)에서 소화기 개발부서를 지휘해오던 스터들러(Rene Studler, 1895-1980) 대령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서 신형소총을 개발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터들러는 이미 2차대전 당시부터도 M1 개런드 소총을 개량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실시해오고 있었다. 스터들러는 1944년 존 개런드(John C. Garand, 1888-1974)를 불러들여 M1 개런드 소총을 연발 화기로 만든 T20 시제총기를 개발했다. 새로운 총기는 연발사격이 가능함은 물론이고 클립장전식에서 탄창 장전식으로 변경되었다. 미 육군 병기단의 기술위원회는 T20E2 소총 10만정을 구매할 것을 권고했지만, 1945년 5월 8일 2차대전의 유럽 전선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사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하지만 연발 이외에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30 M2탄은 한계가 컸다. 특히 기껏 등장한 볼 파우더 장약도 .30 M2에 장전하면 탄피에 남는 공간이 많아, 사격을 하면 정상탄도에서 심하게 일탈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유럽의 경우처럼 미국도 탄피의 길이를 줄여야만 했는데, 미국은 독일과는 달리 성능의 저하가 없이 탄피 길이만 약 1cm 정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에 따라 병기단에서는 신형 탄환인 T65의 개발에 나섰지만, 이 또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참 후순위의 사업으로 밀려났다.

스터들러 대령은 M1 개런드의 자동화와 T65 탄약을 결합시킬 새로운 총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독일의 7.92x33mm 쿠르츠(Kurz) 탄과 같은 위력이 약한 탄환에 대해서는 스터들러는 부정적이었다. 휴대성보다는 명중률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보병전술사상이 기본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프링필드 아모리(Springfield Armory)의 젊은 설계자인 얼 하비(Earle Harvey)는 1945년 말 T25라는 시제소총의 설계를 완성했다. 한편 1946년에 열린 육군의 소총요구성능획정위원회(Rifle Requirements Board)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구성능을 확정하면서 T25의 개발을 지지했다.

.30구경의 경량탄을 사용하는 소총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
● 최대 중량 7파운드(3.17kg)
● 단발과 연발 선택가능
● 현용 제식소총(M1 개런드)과 유사한 탄도성능 보유

이에 따라 미 육군은 기존의 M1 개런드 소총, M1/M2 카빈, BAR, M3 그리스건 등의 보병 개인화기를 하나로 묶을 경량소총사업(Light Rifle Project)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T25는 설계안을 넘어서 본격적인 시험개발에 접어들었다. T25의 단점은 가벼운 총기에 강력한 탄환을 조합함으로써 연발시에 제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었다. T25 이외에 육군은 기존의 M1 개런드 소총에 T65탄환을 사용할 수 있는 총기를 별도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1949년부터 개발된 이 총기는 T44라고 불렸다. T44는 T25의 개발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이었다.

한편 경량소총사업에는 미국의 스프링필드 아모리 뿐만 아니라, 영국제  EM-2 불펍소총도 참가했고, 벨기에 FN(Fabrique Nationale de Herstal)사는 FAL(Fusil Automatique Léger) 소총을 T48이란 이름으로 출품했다. 그리고 1950년  T25, EM-2, T48의 3개 총기가 참가한 가운데 공식적인 경쟁시험사격이 최초로 실시되었다. 비록 3가지 총기 모두 상당한 정밀도와 신뢰성 등을 보였지만, 아직 그 어떤 것도 당장 채용할 만큼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육군은 사업자가 없음을 선언했고, 경량소총사업은 점차 추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 3개 총기의 사격결과 미국제 총기인 T25가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함에 따라 미측은 오히려 더욱 개발의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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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마샬리포트

한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하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을 맞이하여 미군은 초기에 고전을 거듭했다. 소모적인 보병전투가 계속되던 한국전을 바라보며 국방연구진들은 기존 소총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특히 존스 홉킨스 대학의 작전연구소(ORO; Operations Research Office)에 소속된 역사학자이자 미육군 예비역 장교인 S.L.A 마샬(Samuel Lyman Atwood Marshall, 1900-1977)은 한국전에 참전한 미8군의 사관(史官)/작전분석가의 자격으로 3개월간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한국에서의 보병작전과 무기사용에 대한 해설(Commentary on Infantry Operations and Weapons Usage in Korea, 이하 ‘마샬 리포트’)’이라는 142쪽짜리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는 도우보이 사업(Project DOUGHBOY)의 결과물로, 도우보이 사업이란 한국전쟁 당시 ORO가 실시한 일련의 연구들 가운데 보병무기체계에 관한 것이었다.

마샬은 2차대전 당시에도 공식 사관의 자격으로 “대인화력(Men Against Fire)”라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마샬은 이번의 보고서에서 2차대전의 양상이 한국전에서도 반복되었음을 지적했다. 게다가 한국전에서는 기갑전투차량이 부재했던 상황으로 인하여 전쟁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는 점을 기록했다. 마샬 리포트는 미군보병의 약 75%가 2차대전때와 동일하게 적에 대하여 지속적인 사격을 실시할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더우기 보병이 사격을 할 수 있었던 경우라고 해도 사격의 정확성은 달성될 수 없었음이 지적되었다.

게다가 마샬 리포트는 미군 수뇌부가 강조하던 장거리 정밀사격이 실전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적했다. 실제로는 200야드를 넘어서면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소총사격으로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마샬 리포트는 밝히고 있다. 마샬 리포트에 따르면 결국 현대전투에서는 단거리에서 중거리까지 대량의 사격집중이 이뤄져야만 의미 있는 교전이 가능하며 장거리 정밀 소총사격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심지어는 장거리 사격술을 자랑하던 미 해병대조차 마샬 리포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들은 정밀한 사격을 실시하지 못했는데, 300-350야드에 완전히 노출된 적군에 대해서 해병의 사격은 유효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미 해병은 육군에 비해 무려 250%나 사격술 훈련을 더 받고 있지만, 38%가 신병이던 미 육군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사격결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샬 리포트는 각 총기를 평가하면서 M1/M2 카빈에는 낙제점을 준 반면 M1 개런드는 높이 평가하였다. 이에 따라 카빈은 전량 M1 개런드로 교체할 것을 권하는 반면, 분대마다 BAR를 1정 추가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각 BAR로 보강된 2개의 사격조가 400야드까지 교전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한계는 .30 M2 탄환으로, 너무도 무거워서 개인당 탄환 휴대가 100발로 제한되었다.

피 말리는 시험평가

1950년의 시험결과 이후, 실망스러운 결과를 냈던 T25는 T47로 이름이 바뀌면서 계속적인 연구개발이 이어졌다. 한편 대안사업으로 시작되었던 T44 시제총기에 대한 추가개발도 진행되었다. 사실 T44의 개발은 워낙 작은 예산으로 진행되다보니, 수석설계자가 없이 스프링필드 아모리의 설계진들이 돌아가면서 조금씩 아이디어를 더하는 수준이었다. T25의 실패 이후 미 육군 병기단은 남은 예산을 모두 긁어모아 T44에 모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하비의 소총설계팀에 소속된 로이드 코르벳(Lloyd Corbett)이라는 엔지니어가 설계를 도맡아 피스톤과 볼트롤러를 추가하여 마찰을 줄임으로써 T44의 성능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차기소총의 선정을 위해 1952년 보병 사용자 위원회(Infantry User Board)가 실시한 시험평가에는 T47(T25의 개량형)과 T48(즉 FN FAL)에 더하여 T44가 후보에 더해졌다. 이듬해까지 계속된 시험평가에서 T47은 먼지와 추위에 취약한 결과로 인하여 후보에서 진작에 제외되었다. 반면 T48과 T44는 거의 동등한 성능을 보여주었는데, 야전분해의 용이성과 오염환경의 신뢰성의 측면에서는 T48이 앞서면서 T48이 유력한 미군 차기소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잦은 인원교체로 전문성이 지극히 낮았던 보병위원회는 T48을 채택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추가적인 시험평가를 권고하면서 T44와 T48의 재대결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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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48이 선전하자, 긴장한 스프링필드 아모리는 1953년 겨울부터 실시될 극한지 성능평가에 만반의 대비를 했다. 설계진은 T44의 가스압조절기를 다시 설계하고 탄창 등 기타 부위의 마찰을 줄임으로서 극한지 성능을 극대화했다. 반면 별다른 준비가 없었던 T48은 드디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FN 설계진들은 가스배출구를 개방하여 기능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탄피의 조기배출현상이나 부품파손현상 등이 생겨났다. 극한지 성능에서 T44가 판정승을 거두면서, 1954년 보병위원회는 이듬해에 또다시 극한지 시험평가를 통해 T48이 성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후보에서 제외시킬 것이라고 엄포했다.

한편 1954년  6월이 되자, 드디어 T44의 추가개발에 사용될 예산이 확보되었다. 스프링필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T65 탄환에 맞도록 T44의 총몸을 재설계했다. 이 단 한 번의 개량으로 T44는 무려 1파운드(약 453g)나 감량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사이에 T48은 극한지 성능을 치열하게 보완하여 1955년 무렵이 되자 T44만큼이나 신뢰성이 높아졌다. T44와 T48 사이의 승부는 호각지세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슷한 성능에 무게가 더 가벼워진 T44가 고지를 점령했다. 이제 T44의 차기소총 선정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다크호스의 마지막 도전

한편 1954년 6월이 되자, 드디어 T44의 추가개발에 사용될 예산이 확보되었다. 스프링필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T65 탄환에 맞도록 T44의 총몸을 재설계했다. 이 단 한 번의 개량으로 T44는 무려 1파운드(약 453g)나 감량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사이에 T48은 극한지 성능을 치열하게 보완하여 1955년 무렵이 되자 T44만큼이나 신뢰성이 높아졌다. T44와 T48 사이의 승부는 호각지세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슷한 성능에 무게가 더 가벼워진 T44가 고지를 점령했다. 이제 T44의 차기소총 선정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T44가 승전보를 울리려는 순간,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1954년 10월 창립된 총기회사 아말라이트(Armalite)는  항공기용 알루미늄의 신소재와 가스직결식 작동방식을 채용한 신형소총 AR-10을 1955년 완성시켰다. AR-10은 최초에는 .30 M2 탄환용으로 만들어졌다가, 이제 NATO표준으로 선정된 T65E5 탄환용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여기에 세번째 시제총기인 AR-10A부터는 총열덮개와 개머리판, 권총손잡이 등에 플라스틱 재질이 채용되면서 무게까지 가벼워졌다.

AR-10의 수석설계자인 유진 스토너(Eugene Morrison Stoner, 1922-1997)는 1955년 12월 바로 이 AR-10A을 보병위원회에 보내면서 이제  AR-10과 T44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1956년부터 AR-10A 소총의 본격적인 시험평가가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AR-10A는 가능성은 엿보였지만 아직 T44를 능가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병기단의 개발국에서는 아말라이트의 설계진에게 프로젝트 살보(Project SALVO; 소총의 분산집탄군에 대한 연구)의 결과를 알려주면서 소구경 소총의 개발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아말라이트는 새로운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반면, AR-10A의 개량에 나섰다. 유진 스토너는 기존의 탄소강 총열대신 스테인레스 스틸과 알루미늄의 합금총열을 채용하여 열무게를 줄인 네번째 시제총기 AR-10B를 선보였다.

AR-10B는 1956년 가을부터 시험평가에 들어갔다. 시험평가는 T44와 T48이 거쳤던 것과 똑같은 과정으로 실시되었으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멜빈 존슨(Melvin Johnson, 1909-1965)이 아말라이트의 컨설턴트 자격으로 시험과정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그러나 12월 중순부터 AR-10B는 점차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염기, 탄피배출기, 방아쇠 지렛대 등이 깨져나갔고, 송탄불량, 격발불량 등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리고 1957년 1월부터 시작된 내구성 테스트에서 드디어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영하의 온도에서 사격을 하면서 총알이 총열을 뚫고 옆으로 터져나와버린 것이다. 아말라이트 설계진은 긴급히 T44의 탄소강 총열을 수배하여 경량화 작업을 거친 후 AR-10B에 장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총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AR-10B는 그 외의 부품들에서 고질적으로 반복하여 고장증상을 보였다. 결국 지쳐버린 미 육군 병기단은 AR-10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으며 군용으로 사용하기는 적절하지 못한 총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말라이트는 더 이상은 T44에 대항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AR-10의 해외판매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마지막에 등장한 다크호스가 스스로 무너지자, 1957년 5월 T44 시제소총은 ‘미군 제식소총 M14(U.S. Service Rifle M14)’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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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하다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한남대와 신안산대 등에서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방위사업청,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국제협력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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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건스(PAPAGUNS) 입니다 】
베트남전을 거쳐 현대전까지….다른 총들이 딱콩 거릴때 유난히 M14의 존재감은 두드러집니다.
신뢰성 있는 구조, 길쭉한 자태에 7.62의 강력한 파워, 미군에서도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M14의 민수버전인 스프링필드사의 M1A SOCOM2 입니다.
레일의 강화와 함께 휴대성을 강조한 총답게 현대전에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것 같습니다. 다만 비싼 가격과 장탄수, 휴대량이 조금 아쉬울 뿐…
Movie info: https://www.youtube.com/watch?v=Ce4SC4KomE\u0026t=4220s
M14 M1A M1A S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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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총? M14이야기[개념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짜상식!개진상 IF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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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짜 상식!!
개.진.상 if
AK47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M14!
결국 십년도 못버티고 베트남 전쟁 이후에 M16에게 제식소총의 자리를 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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