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11월 혁명 | 유리 안드로포프 – Pickp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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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혁명(러시아어: Но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은 국가보안위원회 주석 유리 안드로포프소련군 방공군 부사령관 알렉산더 포크리쉬킨을 필두로 한 비밀 사조직 프룬제 볼셰비키가 1975년 11월 8일 소비에트 연방 레닌그라드모스크바에서 일으킨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실각했으며, 노멘클라투라가 몰락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알렉산데르 둡체크 서기장이 내세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비롯한 많은 개혁적인 사회주의가 소련의 현실사회주의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는 극도로 경직된 관료주의 사회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변화하는 계기였다.

배경

당시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1968년 11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통해 당해 8월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을 막기 위해 진행했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이 공산주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로 변화시키려 하거나 공산주의 국가가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을 할 때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독트린이다. 이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을 포함한 동구권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고 앞으로의 민주화 가능성 역시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또한 소련 내부를 개혁하려는 의지 역시 보이지 않으며 소련 사회를 더 경직시키고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소련은 노멘클라투라를 중심으로한 극심한 관료주의와 부정부패의 늪에 빠져들게 됐다. 거기다 원자재 수출과 중공업, 군수공업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를 개혁하지 못해 늘어나는 구매력에 비해 소비재 생산력은 매우 떨어져 지하 경제가 더욱 활성화되는 심각한 경제 침체까지 겪었다. 브레즈네프의 이런 행보는 소련 내외에서 큰 불만을 야기했다. 실제로 1969년 1월 22일, 빅토르 일린이 브레즈네프 암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브레즈네프 체제에 대한 불만은 강해지고 있었다.

과정

빅토르 일린과 KGB

1969년 1월 22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암살 미수범인 빅토르 일린은 체포된 직후 KGB로 이송되었다. 일린은 조사 과정에서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직접 암살 동기를 밝혔다. 일린은 지질학자가 되고자 지형기술학교에 입학했었는데 이때 소련의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빈곤, 알코올 중독 등으로 황폐해진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일린은 TV에서 보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현실에 소련 지도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에 일린은 정체된 소련의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천연자원 판매 수익금을 모든 시민에게 재분배하는 내용 등의 개혁안을 브레즈네프 앞으로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고 결국 암살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거기다 일린은 소련이 프라하의 봄을 중단시키기 위해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변화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생각해 괴로웠다고 설명했다. 안드로포프는 이런 일린의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상당수의 소련 시민들이 브레즈네프 아래의 소련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서기장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에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안드로포프는 일린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고 정신 이상을 명목으로 정신 병원에 수감시켰다. 소련의 최고지도자를 암살하려 했던 사람이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곧 체제에 대한 불만이 만연함을 공인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 지 2달 만에 중소 국경 분쟁이 발발하면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이 가시화되었다. 1969년 말, 소련이 아닌 중국을 따르기 시작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생기자 소련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결국 개혁을 위한 쿠데타를 계획하게 됐다. 안드로포프가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거사 시 KGB와 자신을 도울 군내 비밀 사조직을 결성하게 하는 것이었다.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전공을 부풀리도록 강한 압박을 받았음에도 거절해온 알렉산더 포크리쉬킨 당시 소련 방공군 부사령관을 포섭했다. 1970년 4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설적인 조종사였던 포크리쉬킨은 안드로포프의 요청대로 프룬제 군사대학 출신의 장교들로 이루어진 사조직을 결성한다. 프룬제 볼셰비키라고 불리는 이 조직에는 당시 소련 해군 북방함대 참모장이었던 게오르기 예고로프, 소련 육군 제2근위전차군 사령관이었던 블라디미르 고보로프와 같은 고위 장교진부터 발레리 사블린 등, 젊은 정치 장교들도 가입했다.

프룬제 볼셰비키의 혁명 성공 후 사진

프룬제 볼셰비키의 젊은 장교들은 KGB와 조직 내 고위 장교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소련군의 주요 보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72년을 기점으로 예고로프는 북방 함대 부사령관, 고보로프는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으로 각각 승진했고 많은 수의 예하 부대 정치장교들을 프룬제 볼셰비키 소속 장교들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안드로포프는 비대해진 군부 견제와 감시를 빌미로 KGB를 통해 군의 통신망을 전부 장악, 감청했다. KGB의 혁명 계획은 포크리쉬킨과 안드로포프를 포함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두에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프룬제 볼셰비키 소속의 초급 장교들 역시 혁명 1달 전까지 계획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 군부를 성공적으로 포섭한 안드로포프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를 보고 대테러부대의 필요성을 느껴 알파 그룹빔펠 그룹을 창설해 KGB의 자체 특수 작전 수행 능력을 키웠다. 이 두 부대는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혁명의 신호탄

1975년 10월, 드디어 안드로포프와 프룬제 볼셰비키의 고위 장교들은 10월 혁명 기념일에 맞춰 혁명을 일으킬 것을 결정했다. 먼저 안드로포프는 소련의 경직된 체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던 발레리 사블린에게 선상 반란을 일으킨 후, 발트 함대를 무력화하고 레닌그라드를 장악할 것을 지시했다. 10월 혁명 기념일을 위한 행사와 열병식 준비가 한창이었던 소련군은 프룬제 볼셰비키의 혁명 준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혁명의 포문을 열도록 지시받은 발레리 사블린은 당시 발트 함대 소속의 프리깃함이었던 스토로제보이 호의 정치 장교였다. 사블린은 스토로제보이 호에서 사상 교육을 진행하며 러시아 혁명에서의 해군의 역할, 수병들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교육해 수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스토로제보이 호의 수병이었던 알렉산드르 셰인은 사블린에게 크게 감동하여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고 사블린은 셰인과 함께 구체적인 혁명 계획을 세웠다.

약 한 달 후인 1975년 11월 8일 오후 6시, 사블린과 셰인은 행동을 개시했다.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라트비아 리가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스토로제보이 호의 아나톨리 포툴니 함장을 감금하는 것이었다. 사블린은 함 내에 있던 장교들과 수병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동참하도록 설득했다. KGB는 리가 항구 근처에서 사블린의 실패를 대비해 스토로제보이 호 확보를 위한 스페츠나츠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절반이 넘는 수인 8명의 장교들과 모든 수병이 사블린의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자원했고, 반대하는 장교들과 함장을 감금하는 데 앞장섰다. 포툴니 함장과 반대파는 저항을 시도했지만 포툴니 함장이 수병들의 총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자 결국 혁명파에게 항복했다. 성공적으로 함장과 반대파를 제압한 사블린과 혁명파는 스토로제보이 호에 KGB의 스페츠나츠들을 승선시키고 레닌그라드를 향해 출항했다. 출항 직후, 사블린은 안드로포프에게 계획이 잘 진행됐으며 레닌그라드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안드로포프는 즉시 대기하고 있던 KGB 스페츠나츠의 알파 그룹과 빔펠 그룹 대원들의 작전 시작을 명령했다. 리가 항구, 레닌그라드 항구, 발트 함대 사령부에 침투한 알파 그룹과 빔펠 그룹은 각 장소의 주요 요인을 제압했다. 덕분에 소련 군부는 발트 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사블린은 리가 항구를 떠난 지 10시간 만인 11월 9일 새벽 4시, 아무런 방해 없이 레닌그라드 항구 앞까지 도착했다.

사블린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프룬제 볼셰비키 장교들과 KGB의 도움으로 무사히 레닌그라드 항구에 정박한 후, 곧장 레닌그라드의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다. 11월 9일 새벽 5시경, 방송국을 점령한 프룬제 볼셰비키는 라디오를 통해 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에게 함께할 것을 호소했다. 레닌그라드 전역에 사블린의 방송이 계속해서 울려펴졌고 이는 소련 당국의 귀에도 들어갔다. 10월 혁명 기념식이 끝난 뒤, 소치로 휴가를 떠났던 브레즈네프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즉시 안드레이 그레치코 국방장관에게 ‘반체제 쿠데타’를 진압할 것을 명령했다. 그레치코 국방장관은 무력화된 발트 함대와 레닌그라드 항구를 탈환하고자 북방 함대의 출격을 명령했지만 예고로프는 북방 함대가 발트 해로 이동할 시 바렌츠 해에 전력 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로 출격을 거부했다. 사실상 소련 해군은 혁명에 가담한다는 의미였다. 북방 함대의 명령 불복에 당황한 그레치코는 혁명군이 레닌그라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고자 급히 제45근위차량화소총병사단과, 제64근위차량화소총병사단을 동원해 레닌그라드를 포위했다. 그레치코는 브레즈네프의 지시로 11월 9일 새벽 5시 40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크렘린으로 정치국 주요 인사들을 소집했다. 그러나 이 지시가 브레즈네프의 마지막 지시가 되었다.

모스크바 봉쇄와 혁명의 성공

소련 당국의 시선이 레닌그라드로 쏠린 사이 KGB는 11월 9일 새벽 5시 50분, 제36국경수비대를 통해 브레즈네프가 머물고 있던 소치 별장의 모든 통신을 차단하고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를 봉쇄해 브레즈네프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KGB의 브레즈네프 감금 직후인 11월 9일 오전 6시, 블라디미르 고보로프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의 지시로 출동한 제106근위공수사단, 제2근위차량화보병사단이 각각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쿠빈카 공군 기지로 진입했다. 소련 공군이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방공군 사령관이었던 알렉산더 포크리쉬킨은 소련 영공의 모든 항공기의 비상 착륙을 명령하며 방공군 전 부대에 본인의 허가 없이 이륙 또는 비행하는 모든 항공기를 격추하라고 지시했다. 제대로 된 출격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제공권을 상실한 소련 공군은 결국 별다른 저항 없이 공항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공항을 확보한 혁명군은 수송기를 동원해 요격기의 호위 아래 제76근위공수사단제103근위공수사단을 모스크바로 수송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모스크바 근교를 장악한 혁명군은 대기 중이던 제4근위전차사단, 제27근위차량화소총병사단과 함께 오전 6시 50분경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했다.

모스크바에 진입한 혁명군은 즉시 모스크바를 봉쇄하고 모든 교통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혁명군은 소련 내무군과 함께 방송국, 철도역, 신문사를 차례로 점거했다. 모스크바에 진입한 지 약 1시간 후인 11월 9일 오전 7시 45분, 주요 기반 시설을 확보한 혁명군과 KGB는 크렘린을 포위했다. 혁명군은 그레치코 국방장관에게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모든 권력을 이양할 것을 약속했다며 항복을 제안했다. 그러나 크렘린에 있었던 그레치코와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혁명군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레치코는 주요 군부의 명령 불복종으로 인해 열세에 있으나 충분히 혁명을 진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레치코는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있던 사단들을 급히 모스크바로 불러들였고 혁명군에 가담하지 않은 사단들 역시 모스크바로 집결시켰다. 그러나 11월 9일 오전 9시 50분 경, 혁명군의 제60전차사단, 제206차량화소총병사단제76근위공수사단, 제103근위공수사단이 진압군보다 먼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든 혁명군 사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한 후인 11월 9일 오전 10시, 유리 안드로포프는 모스크바 라디오를 통해 소비에트 연방 전역에 혁명의 성공을 알리는 연설 방송을 송출했다. 연설에서 안드로포프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소련의 사회주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었으며 온갖 사치를 부리면서도 침체되고 있는 소련의 경제는 완전히 방관했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정체된 소비에트 연방의 개혁을 약속하며 혁명군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안드로포프의 연설을 들은 그레치코는 격노하며 진압군에게 모스크바 탈환에 총력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모스크바로 향하던 진압군은 내전으로의 확전 위험이 있다는 핑계로 더는 모스크바로 진군하지 않았다. 군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그레치코 국방장관은 크렘린 경비 병력과 항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의 연설을 듣고 전세가 기울었다 판단한 크렘린 경비 병력 일부가 KGB와 혁명군의 크렘린 입성을 도왔다. 결국 11월 9일 오전 11시 20분경, 그레치코를 비롯한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크렘린에 들이닥친 혁명군에 의해 전원 체포되었다. 혁명군은 스토로제보이 호가 리가 항구를 떠난지 약 17시간 만에 혁명에 성공했다.

노멘클라투라 체포

성공적으로 혁명을 완수한 유리 안드로포프는 즉시 모스크바에 수배령을 내려 소련 공산당의 보수파 당원들과 공직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KGB는 혁명 직후부터 1975년 12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앙위원들을 시작으로 백 명이 넘는 각 정부 부처의 주요 인사들을 체포해 조사했다. 특히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리는 공산당 고위 간부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당직자로서 활동하던 특권 계급층을 청산하는 데 주력했다. 노멘클라투라는 본래 공산당에서 관료를 내정하는 방식과 관료 및 당직자 목록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였지만 내정된 관료들이 부정부패에 빠지자 특권 계급층을 뜻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노멘클라투라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었던 직책을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승계하면서 귀족화되어버려 온 가족이 줄줄이 체포되는 경우도 잦았다.

안드로포프는 노멘클라투라들이 저지른 부정부패를 밝혀내고 프라우다와 같은 언론을 통해 ‘레닌의 배신자’라는 표현과 함께 공개 비판했다. 또한 이들의 재판과 처벌 내용을 공개하면서 소련 국민들의 혁명 정부를 향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1970년대 들어 50만 명을 넘겼던 노멘클라투라의 수는 혁명 이후 절반이 넘게 감소했다. KGB에 의해 강제 연금되어 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을 비롯한 보수파 공산당 고위 간부들은 1975년 12월 29일, 소련 최고평의회 상임위원회의 불신임 투표를 통해 모두 당에서 제명당했다. 브레즈네프를 실각시킨 안드로포프는 같은 날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으며 보수파가 물러난 자리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과 같은 젊은 개혁파가 차지했다. 안드로포프는 제명당한 간부들을 모두 시베리아의 도시들로 강제 이주시킨 뒤, 가택 연금에 처했다. 공산당과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의 신호탄이었던 노멘클라투라 청산은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경직되고 침체되어 가던 소련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결과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

냉전의 완화

철의 장막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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