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마리 콜빈 – Pickpeup

마리 콜빈: นี่คือโพสต์ที่เกี่ยวข้องกับหัวข้อนี้

 

 

 

콜빈 [Colvin, Marie, 1956.1.12~2012.2.22] 

마리 콜빈(Marie Colvin, 1956년 1월 12일 ~ 2012년 2월 22일)은 미국의 전쟁 전문 기자이다. 예일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1985년부터 영국 선데이 타임즈 기자로 일하며 걸프전과 체첸 분쟁, 코소보 내전, 스리랑카 내전 등을 취재했다. 2012년 시리아 사태 취재 도중 포격으로 사망했다. /위키백과

 

 

Marie Colvin

Marie Catherine Colvin (January 12, 1956 – February 22, 2012) was an award-winning American journalist who worked for the British newspaper from 1985 until her death. She died while covering the siege of Homs in Syria.

Early life

Marie Colvin was born in Astoria, Queens, but grew up in East Norwich in the Town of Oyster Bay, Nassau County, on Long Island in New York. She graduated from Oyster Bay High School in 1974 and attended Yale University, graduating with a bachelor’s degree in anthropology in 1978.

Career

Colvin started her career in New York City as a midnight-to-6 a.m. police reporter for United Press International (UPI), a year after graduating from Yale. In 1984, Colvin became the Paris bureau chief for UPI, moving to in 1985.

From 1986, she was the newspaper’s Middle East correspondent, and then from 1995 was the Foreign Affairs correspondent. In 1986, she was the first to interview Muammar Gaddafi after Operation . In May 1988 she made an extended appearance on the Channel 4 discussion programme , alongside Anton Shammas, Gerald Kaufman, Moshe Amirav and others.

Specialising in the Middle East, she also covered conflicts in Chechnya, Kosovo, Sierra Leone, Zimbabwe, Sri Lanka and East Timor. In 1999 in East Timor, she was credited with saving the lives of 1,500 women and children from a compound besieged by Indonesian-backed forces. Refusing to abandon them, she stayed with a United Nations force, reporting in her newspaper and on television. They were evacuated after four days. She won the International Women’s Media Foundation award for Courage in Journalism for her coverage of Kosovo and Chechnya. She wrote and produced documentaries, including for the BBC. She is featured in the 2005 documentary film .

Colvin lost the sight in her left eye due to a blast by a Sri Lankan Army rocket-propelled grenade (RPG) on April 16, 2001 while crossing from a LTTE controlled area to a Government controlled area; thereafter she wore an eyepatch. She was attacked even after calling out “journalist, journalist!” while reporting on the Sri Lankan Civil War. She told Lindsey Hilsum of Channel 4 News that her attacker “knew what he was doing.” Colvin had walked over 30 miles through the Vanni jungle with her Tamil guides to evade government troops; she reported on the humanitarian disaster in the northern Tamil region, including a government blockade of food, medical supplies and prevention of foreign journalist access to the area for six years to cover the war. Colvin later suffere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required hospitalisation following her injuries. She was also a witness and an intermediary during the final days of the war in Sri Lanka and reported on war crimes against Tamils that were committed during this phase.

In 2011, while reporting on the Arab Spring in Tunisia, Egypt and Libya, she was offered an opportunity to interview Muammar Gaddafi, along with two other journalists that she could nominate. For Gaddafi’s first international interview since the start of the war, Colvin took along Christiane Amanpour of ABC News and Jeremy Bowen of BBC News. Colvin noted the importance of shining a light on “humanity in extremis, pushed to the unendurable”, stating “My job is to bear witness. I have never been interested in knowing what make of plane had just bombed a village or whether the artillery that fired at it was 120mm or 155mm.”

Personal life

Colvin was married twice to journalist Patrick Bishop; both marriages ended in divorce. She also married journalist Juan Carlos Gumucio, who committed suicide in 2002. She resided in Hammersmith, West London. She had no children.

Death

In February 2012, Colvin crossed into Syria on the back of a motocross motorcycle, ignoring the Syrian government’s attempts to prevent foreign journalists from covering the 2011–2012 Syrian uprising. Colvin was stationed in the western Baba Amr district of the city of Homs, and made her last broadcast on the evening of February 21, appearing on the BBC, Channel 4, CNN and ITN News via satellite phone. She described “merciless”, indiscriminate shelling and sniper attacks against civilian buildings and people on the streets of Homs by Syrian forces. Colvin, who had lost an eye to shrapnel in Sri Lanka and had covered conflicts in Chechnya, Kosovo, Sierra Leone, Zimbabwe, Libya, and East Timor, described the bombardment of Homs as the worst conflict she had ever experienced.

Colvin and award-winning French photographer Rémi Ochlik died on February 22, 2012 while fleeing an unofficial media building which was being shelled by the Syrian Army. Journalist Jean-Pierre Perrin and other sources reported that the building had been targeted by the Syrian Army, identified using satellite phone signals. Their team had been planning an exit strategy a few hours prior. on the evening of February 22, 2012, people of Homs mourned in the streets in honour of Colvin and Ochlik. Tributes were paid to Colvin across the media industry and political world following her death. reported that Colvin had died with Ochlik trying to retrieve their shoes to escape army bombardment of the building they were in; footage emerged from Syria reporting the burial of their bodies in a garden near where they were killed, before they were exhumed and taken to Damascus before repatriation. An autopsy conducted in Damascus by the Syrian government concluded Marie Colvin was killed by an improvised explosive device filled with nails. The Syrian government claims the explosive device was planted by terrorists.

Colvin’s funeral took place in Oyster Bay, New York on 12 March, 2012, in a service attended by 300 mourners including those who had followed her dispatches, friends and family.

Awards

* 2000: Journalist of the Year: Foreign Press Association

* 2000: Courage in Journalism: International Women’s Media Foundation

* 2001: Foreign Reporter of the Year: British Press Awards

* 2010: Foreign Reporter of the Year: British Press Awards

http://en.wikipedia.org/wiki/Marie_Colvin

 

——————————————————————————–

 

2012.2.22 – 미국의 전쟁 전문 기자 마리 콜빈(Colvin, Marie) 사망

콜빈 [Colvin, Marie, 1956.1.12~2012.2.22]

 

——————————————————————————–

 

2012 – 시리아 사태 점입가경..정부군 폭격에 기자 2명 사망

정부군 폭격에 美·弗 기자 사망
지난해 3월부터 사망자 7600명 이상

유혈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 정부군 폭격에 외신기자 두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사망자는 7600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이날 오전 시리아 반정부 세력의 거점인 홈스 중심부 바바 아므르를 집중 포격, 이곳에서 취재하던 마리 콜빈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자와 레미 오슐리크 프랑스 사진기자가 현장에서 숨졌다.
기자경력 25년차인 콜빈은 지난 20년간 특파원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취재해왔다. 지난 2001년 스리랑카 내전 취재 도중 수류탄 파편을 맞아 왼쪽 눈을 잃고 검은색 안대를 하고 다닌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의 인터뷰에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과 프랑스는 두 기자의 사망 소식에 즉각 시리아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아사드 정권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부군의 폭격으로 이날 하루 홈스에서만 최소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인권관측소 측은 지난해 3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 이후 정부군의 유혈진압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76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READ  Star Wars: Visions | English Dub Trailer | Disney+ | star wars | En son Tay şarkıları

안혜신 기자 ahnhye@ /이데일리 2012.02.23 08:55

http://www.edaily.co.kr/news/issue/IssueRead.asp?DCD=A00902&hot_gb=

5&hot_cd=2781&newsid=01351366599433472

 

 

2012 – 스리랑카서 한쪽눈 잃은 美여기자 시리아서 사망

시리아 분쟁 지역에서 취재를 벌이다 순직한 50대 미국 여기자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과 BBC 방송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이날 오전 홈스 중심부의 바바 아므르에 집중 포격을 가하면서 그 지역에 있던 영국 선데이 타임스의 마리 콜빈(56.미국)과 프랑스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28.프랑스)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두 기자는 시리아 반정부 거점인 홈스에서 현지 주민과 정부군의 공격 등을 취재 중이었다. 이날 정부군의 포격으로 시리아에서 두 서방 기자를 포함해 57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시리아 활동가는 전했다.
콜빈은 유산탄의 파편에 맞았고 오슐리크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뒤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선데이 타임스에 25년 전 입사한 콜빈은 20년 넘게 특파원으로서 세계 각지의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을 취재해 온 종군 베테랑 기자였다.
1990년대 코소보와 체첸, 동티모르를 비롯해 지난해 `아랍의 봄`이 불었던 리비아도 직접 다녀왔다.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도 인터뷰했다.
콜빈은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던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을 잃고 난 뒤 검은색 안대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콜빈은 “방탄조끼를 벗지 않겠다”며 계속해서 세계의 위험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최근 홈스 지역에 취재를 나온 콜빈은 지난 21일 BBC와 인터뷰에서 “오늘 두 살이 된 아기의 죽음을 목격했다. 정말로 끔찍했다. 아이의 옷을 떼어냈더니 왼쪽 가슴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명의 자국 기자 사망 소식에 미국과 프랑스는 즉각 시리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 비극적 사건은 알 아사드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다”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제 충분하다. 아사드 정권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시리아의 아드난 마흐무드 정보장관은 “숨진 서방의 두 기자가 시리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gogo213@yna.co.kr /연합뉴스 2012/02/23 02:18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2/02/23/

0605000000AKR20120223004700079.HTML

 

 

2012 – 시리아 정부군, 기자도 표적 살해?

미디어센터 포격…기자 2명 등 60여명 숨져
유혈진압 보도 통로 파괴…계획된 공격인듯

유엔 안보리 결의 1783호는 ‘전쟁지역에서의 언론인 안전보장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에선 의미가 없다.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 시작 이래 사망자가 7600명을 넘어선 이 나라는 이제 종군기자들의 ‘묘지’가 되어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반정부군의 거점인 홈스의 중심부 바바 아무르에서 영국 <선데이 타임스>의 마리 콜빈(56·여·왼쪽 사진)과 프랑스 프리랜서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28·남·오른쪽)가 22일 임시 프레스센터에 대한 정부군의 포격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포격으로 두 기자를 포함해 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드난 마흐무드 시리아 정보장관은 “숨진 두 기자가 시리아에 있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공격은 계획된 ‘표적 살인’에 가까웠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누리집에 “미디어센터에 11개의 로켓탄이 떨어졌다”는 증언을 실었다. 특히 프랑스 <리베라시옹>의 특파원 장 피에르 페린은 시리아 정부의 기밀보고서를 인용해, 시리아 당국자들이 레바논 국경과 홈스 사이에 있는 모든 기자들을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프레스센터를 공격한 것은 이곳이 정부군의 잔인한 공격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진 콜빈 역시 이런 위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페린과 함께 홈스를 떠났다가 기어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뒤 변을 당했다.
예일대를 졸업한 미국인 콜빈은 25년 전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입사해 20년 넘게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취재해 왔다. 1990년대 코소보와 체첸, 동티모르를 누볐고, 지난해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도 인터뷰했다. 지난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을 잃은 이후 ‘검은 안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지난 21일 영국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오늘 두 살짜리 아기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의 옷을 떼어냈더니 왼쪽 가슴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콜빈이 작성한 마지막 기사는 지난 19일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우리는 대학살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였다. ‘그녀는 죽었다’(she died)로 마침표를 찍은 이 기사와 함께 한 뛰어난 종군기자의 삶도 끝이 났다.
함께 숨진 오슐리크 역시 리비아 반군 사진 ‘리비아의 전투’로 2011년 세계보도사진전에서 수상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는 종군기자였다. 이들과 함께 있었던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의 에디트 보봐르 기자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23일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이 곳에선) 외과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최대한 빨리 레바논 국경을 넘어가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 채널>의 기자 질 자키에가 시리아 반정부 시위 시작 이후 처음으로 수류탄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6명의 시리아 현지 언론인들도 납치·살해되거나 포격에 숨졌다고 전했다. 미국과 아랍연맹을 비롯한 70여개국은 24일 튀니지에서 시리아 반정부세력과의 접촉그룹인‘시리아의 친구들’첫 회담을 열어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한겨레 2012.02.23 20:22

http://m.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520547.html

 

 

2012 – 애꾸눈 여기자, 시리아서 피격 사망

분쟁지역만 20년 넘게 취재를 해 온 미국의 저명한 종군 여기자가 시리아에서 정부군의 포격을 받고 순직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내전을 취재하다 한쪽 눈을 잃은 상황에서도 취재에 대한 열정이 넘친 마리 콜빈 기자의 얘기인데요. 카이로에서 한상용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서 분쟁지역 베테랑 기자로 명성을 쌓아 온 마리 콜빈.
올해 쉬운 여섯인 콜빈이 시리아 반정부 거점 홈스에서 취재를 벌이다 숨졌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이 홈스 중심부의 바바 아므르에 집중 포격을 가하면서 그 지역에 있던 콜빈이 유산탄의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겁니다.
(인터뷰) 로즈마리 콜빈/ 마리 콜빈의 어머니
“끔찍하다. 결코, 이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나는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로지 비명을 질렀고 도저히 이 소식을 믿을 수가 없다. 너무나 끔찍하다.” (Edit Number: 3274WD) 15초~28초
숨진 콜빈은 홈스에서 현지 주민 인터뷰를 하고 그 지역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던 중이었습니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콜빈은 20년 넘게 특파원으로서 세계 각지의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을 취재해 왔습니다.
1990년대 코소보와 체첸, 동티모르를 비롯해 지난해 ‘아랍의 봄’이 거세게 불었던 리비아도 다녀왔습니다. 리비아에서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도 인터뷰했습니다.
콜빈은 ‘애꾸눈 기자, 미국 취재진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던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을 잃고 난 뒤 검은색 안대를 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콜빈은 “방탄조끼를 벗지 않겠다”며 계속해서 세계의 위험한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끝내 시리아의 격한 내전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도 현장에서 콜빈과 함께 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군의 포격으로 시리아에선 모두 쉰 일곱 명이 죽었다고 인권단체는 밝혔습니다.
카이로에서 연합뉴스 한상용입니다.
한상용 기자 /연합뉴스 2012-02-24 11:45 34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onAir/YIBW_showMPICNews

Popup.aspx?contents_id=MYH20120224001600038

 

 

2012 – ‘애꾸눈’ 종군 기자, 시리아 정부군 포격 사망

시리아의 반정부 거점도시 홈스에서 서방 기자 2명이 정부군의 포탄공격으로 사망했다.
로이터통신,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22일(현지시간) 시리아 정부군이 이날 홈스 중심부의 바바 아므르에 집중 포격을 가하면서 그 지역에서 현지 주민과 정부군공격을 취재 중이던 선데이타임스의 마리 콜빈(56·미국)과 프랑스 사진전문 통신사 IP3 레미 오슐리크(28·프랑스)가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망한 여기자 콜빈은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25년 전 선데이타임스에 입사해 지난 20년 간 특파원으로 세계 각지의 전장을 누벼온 종군 베테랑 기자였다. 지난 2001년에는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던 중 수류탄 파편에 왼쪽 눈을 잃고 난 뒤 검은색 안대를 하고 다녀 ‘애꾸눈 기자’로 불리기도 했다. 앞서 1990년에는 코소보와 체첸, 동티모르를 취재했으며 지난해 ‘아랍의 봄’ 당시 내전 중이던 리비아를 직접 들어가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 인터뷰도 했다.
콜빈은 사망 전날인 지난 21일 BBC와 인터뷰에서 “지금껏 경험한 전장 가운데 시리아가 최악”이라며 현지의 심각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프랑스인인 오슐리크 기자 역시 ‘아람의 봄’ 현장을 누비던 종군 사진 기자였다.
앞서 지난달에서 홈스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공격을 받아 프랑스 기자 1명이 숨졌다.
두 명의 자국 기자 사망 소식에 미국과 프랑스는 즉각 시리아 정부를 비판하며 국제사회가 시리아 정권 퇴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 비극적 사건은 알 아사드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예다”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역시 “이제 충분하다. 아사드 정권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시리아 인권관측소는 반정부 시위 이후 현재까지 76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조윤미 기자 bongbong@ /아시아경제 2012.02.23 13:40
http://www.asiae.co.kr/car/news/view.htm?idxno=2012022313284661136

 

 

 

2012 – Journalists Marie Colvin and Remi Ochlik die in Homs

READ  [Update] How to Create an Engaging New Employee Orientation [+ Templates] | new orientation - Pickpeup

“Two Western journalists have been killed in the Syrian city of Homs when shells hit the building they were in.  They have been named as Marie Colvin, the highly respected American Sunday Times reporter, and Remi Ochlik, an award-winning French photographer.

Several other people were reportedly killed when the shell hit the makeshift media centre in the Baba Amr district.  Opposition-held areas of Homs have been besieged by troops since 4 February. Scores have died in the unrest”

February 23rd, 2012 | Posted in Media | Author: Editor

http://www.globalmediapost.com/2012/02/23/journalists

-marie-colvin-and-remi-ochlik-die-in-homs/

 

 

 

2012 – Brave Marie Colvin killed in Syria siege

One of Britain’s leading war reporters was killed in Syria today when 10 rockets slammed into a makeshift press centre.

Marie Colvin of the Sunday Times died and her photographer Paul Conroy was injured in the rebel city of Homs.

She is the first British journalist to be killed during the onslaught unleashed by president Bashar Assad to suppress a pro-democracy movement.

Hours earlier she told the BBC of the “unrelenting” attack and “absolutely sickening” scenes including one where she watched a two-year-old child die after being hit in the stomach by shrapnel. Colvin had worked in war zones from Kosovo to Chechnya and lost an eye in a 2001 mortar blast in Sri Lanka.

French photographer Remi Ochlik, 28, also died in today’s attack in the Baba Amr district. At least one other Western journalist was reportedly wounded in the rocket and artillery attack on a house that had been turned into a media centre.

Sunday Times colleague Jon Swain said: “Marie was extremely brave and her mission in life was to travel to difficult places and expose the human tragedy of war.”

Pro-opposition areas of Homs have been under a sustained bombardment from government forces since February 3 leaving several hundred people dead. Activists say more than 40 died yesterday.

Amnesty International put the death toll at almost 400 this month alone. Colvin, in her fifties, yesterday told the BBC: “There are 28,000 people in Baba Amr. The Syrians will not let them out and are shelling all the civilian areas.

“There is Free Syrian Army here. They’re very, very lightly armed. People are terrified they will leave. There is just shell, rocket and tank fire pouring into civilian areas of this city.”

Activist Omar Shakar said three as yet unnamed foreign journalists were also injured in the attack.

Witnesses reported shells falling as fast as 10 per minute as Assad’s forces stepped up their pressure on the city which has become a symbol of resistance after withstanding months of attacks despite locals being armed only with light weapons.

Tributes flooded in for the fearless journalist who twice won the British Press Award for Best Foreign Correspondent for her work covering wars in Bosnia, Iran, Sri Lanka and Zimbabwe.

Middle East correspondent for The Independent Robert Fisk said: “Marie was a dauntless lady of tremendous courage.” A spokeswoman for the Duchess of Cornwall, who met Colvin at a service commemorating British journalists killed in conflicts, said: “She is very, very sad to learn of the death of Marie Colvin.”

Rana Kabbani, the Syrian writer and daughter of former Syrian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tweeted: “Marie Colvin covered real humanitarian horror all over the world, but said Homs was the worst she had EVER seen. RIP, heroine.

“(She) was a striking, sassy and serious journalist. She never suffered fools like Assad gladly. He has left her body in bloody pieces.”

In November 2010, Colvin made an emotional speech at journalists’ church St Bride’s in Fleet Street during a service to commemorate the 49 journalists killed this century.

She said: “Covering a war means going to places torn by chaos, destruction, and death …and trying to bear witness. It means trying to find the truth in a sandstorm of propaganda when armies, tribes or terrorists clash. And yes, it means taking risks, not just for yourself but often for the people who work closely with you.

Colvin said the scene of war had remained “remarkably the same for hundreds of years”.

She added: “Craters. Burned houses. Mutilated bodies. Women weeping for children and husbands. Men for their wives, mothers children. Our mission is to report these horrors of war with accuracy and without prejudice.

“We always have to ask ourselves whether the level of risk is worth the story. What is bravery, and what is bravado?”

Oliver Poole and Tom Harper /22 February 2012 London Evening Standard

http://www.standard.co.uk/news/world/brave-marie-colvin

-killed-in-syria-siege-7445773.html

 

 

 

2012 – [월드피플]시리아서 숨진 종군기자 마리 콜빈

콜빈母 “전쟁기사 위해서라면 목숨 아까지 않아”
스리랑카 내전 취재중 눈 잃어..카다피 단독인터뷰도 해

“전쟁터의 그림뿐 아니라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상황이 심각해진 시리아에 머물려 했을 겁니다.” 지난 21일 시리아에서 취재 도중 목숨을 잃은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자 마리 콜빈(56)의 어머니의 말이다.
레미 오슐리크 프랑스 사진기자와 함께 시리아 반군 거점인 홈스에서 사망한 콜빈은 시리아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장을 떠날 것을 지시받았지만, 하루만 더 머물겠다고 밝힌 날 임시 미디어센터에 날아든 포탄에 변을 당했다.
22일(현지시간) 콜빈의 어머니인 로즈마리 콜빈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개 있고 단호한 성격의 딸을 회상했고,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평소 콜빈의 성품을 알기에 콜빈이 시리아 탈출을 늦출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콜빈 기자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 많고 남자 형제들과 어울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 활달한 아이였다. 콜빈의 어머니는 “반전과 여성 인권운동이 분위기가 강했던 1960~1970년대를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제 관심을 뒀고 기자가 되려 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콜빈은 특히 공화당 출신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자택이 뉴욕주 새거모어에 있던 탓에 보수주의 풍토가 강했던 지역에서 민주당 정책활동에 열성을 보였다. 오이스터베이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사위대로 나서기도 했다.
예일대에 들어가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존 허시의 문학 수업을 수강했고 대학신문에서 일하며 기자의 꿈을 꿨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 UPI통신 뉴저지 지사에 들어간 뒤 워싱턴과 파리 지사를 거친 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들어갔다. 이후 콜빈의 화려한 종군 기자 인생이 시작된다.
그는 최근 리비아와 이집트는 물론 걸프전과 체첸 분쟁, 코소보 내전, 스리랑카 내전 등 전쟁터를 누볐다. 특히 2001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 왼쪽 눈과 청력을 잃고부터 눈에 안대를 하고 다녔고,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 단독 인터뷰를 한 후 `미친개와 나`라는 책도 출간했다.
1990년 동티모르에서는 유엔(UN)이 난민들을 인도네시아군에 넘기려 하자 이에 항의하며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고, 그루지야 내전 당시 반군과 함께 험준한 산을 넘어 탈출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번에도 콜빈은 시리아 상황이 위험해진 것을 알면서도 마쳐야 할 기사가 있다며 또다시 모험을 감행했지만 유명을 달리했다. 콜빈의 어머니는 “딸을 위험한 지역에서 떠나도록 설득하는 것은 항상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이데일리 2012.02.24 15:02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

02092646599433800&SCD=&DCD=A00303

 

 

▲22일(현지시간) 시리아 홈스에서 숨진 <선데이타임스>의 종

군기자 마리 콜빈(1956~2012). 이집트 혁명의 심장 타흐리르

광장에서. ⓒAP=연합뉴스

 

2012 – “전쟁 보도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한쪽 눈 잃은 종군기자, 시리아에서 숨지다

시리아의 유혈 사태는 종파 간 내전으로 번지며 계속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부상자 치료를 위해 하루 2시간의 휴전을 시리아 정부와 반군 양측에 제의했지만 어떤 응답도 없는 상태다. 22일(현지시간) 시리아 전역에서는 60여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인 시리아 중서부 홈스에서도 포격은 이어졌다.
이날 홈스를 겨냥한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은 바바 아므르 지구에 설치된 임시 언론 취재센터도 비껴가지 않았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 베테랑 종군기자 1명과 프랑스에서 온 젊은 사진기자 1명이 이 포격으로 숨졌다. 현지 활동가들은 최소 2명의 서방 기자들이 추가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신의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는 아이티와 아랍의 봄 시위를 취재했고 언론상 수상경력도 있는 장래가 촉망받는 인물이었지만 28세로 생을 마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언론인들이 있지 않았다면 대량 학살은 훨씬 심했을 것”이라면서 “이제 충분하다. 시리아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비난했다.
<선데이타임스>의 마리 콜빈은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면서 한쪽 눈을 잃은 이후에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만을 골라 다닌 인물이다. 향년 56세.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그들의 죽음은 홈스 주민들이 겪는 일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면서 “매일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시리아인들의 고통을 상기시켜줬다”고 평했다.
콜빈은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미 국적자로 20년 이상 특파원 생활을 하며 코소보, 체첸, 동티모르, 리비아에서 취재 활동을 했다. 지난해 숨진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도 인터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재능있고 존경받던 특파원”이라며 그를 기렸다.
콜빈의 고국인 미국도 시리아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잔혹한 행위의 또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날 국무부와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시리아가 더 무장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추가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선데이타임스>의 편집자 존 위드로우는 <BBC> 방송에 “콜빈은 특별한 인물”이었다며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전쟁에 대해 보도해야 한다는 열정이 그를 이끌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콜빈을 전쟁터로 이끈 ‘열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의 답은 2010년 11월 영국 세인트브라이드 성당에서 그 자신이 했던 연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콜빈의 연설 전문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우리의 임무는 이 끔찍한 전쟁을 보도하는 것입니다”
여왕 폐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21세기의 전쟁을 보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언론인들과 그 조력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모임에서 여러분께 연설할 기회를 갖게 돼 영광입니다. 저는 제 직업 경력의 대부분을 종군기자로 보냈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소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선에서의 객관적 보도에 대한 필요는 더욱 더 강렬했습니다.
전쟁을 취재한다는 것은 혼돈, 파괴, 죽음으로 찢겨진 장소에 가 사실을 증명하려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군대와 부족(部族), 테러리스트들이 충돌할 때 빚어지는 프로파간다(선전)의 모래폭풍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물론 위험한 일입니다. 스스로에게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트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국방부가 제공하는 영상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또 ‘스마트 폭탄’과 ‘제한적 공습’을 묘사하는 온갖 ‘살균’된 언어들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거의 동일한 상태입니다. 폭발로 파여진 구덩이들, 불탄 집들, 무수한 시체들.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와 남편을 위해 울고 있고 남성들도 아내와 어머니, 자식을 위해 웁니다.
우리의 사명(mission)은 이런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감당해야 할 위험의 수준이 기사의 가치에 비춰 합당한가? 용기란 무엇이며, 또 무엇이 만용인가?
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으며 어려운 선택과 직면하게 됩니다. 때때로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과 지원 스태프 49명을 기립니다. 우리는 또한 상처입고, 불구가 되고, 납치돼 몇 달씩이나 인질로 잡히기도 한 전 세계의 언론인들을 기억합니다. 종군기자가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전쟁터의 언론인들은 제1의 타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리랑카 내전에서 매복 공격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저는 기자의 접근이 금지된 북부 타밀 지역에 갔고 아직 보도되지 않았던 대재앙과도 같은 인권 유린 사태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경계선을 다시 몰래 넘어올 때, 한 병사가 저에게 유탄을 발사했고 파편이 제 얼굴과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주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구인 사진가 조앙 실바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무력이 횡행하는 아프간의 마을과 들에서 사람들이 느껴야만 하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프간에서는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폭발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되며 이는 악몽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저와 커피를 마신 이틀 후, 조앙은 지뢰를 밟아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물어 왔거나 지금 묻고 있을 겁니다. 그게 목숨을 걸 만한, 비통한 일과 손실을 감당할 만한 일인가? 그렇게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저 또한 부상당했을 때 이런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머리기사 제목을 ‘마리 콜빈, 이번에는 너무 멀리 나간 걸까?’ 이렇게 달았더군요.
그러나 당시에건 지금에건 저의 대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당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런 경험들의 대가를 견뎌내야 했던 친구와 동료, 가족들이 와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또한 막대한 재정적, 감정적 대가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특파원들을 계속 전쟁터에 보내 기사를 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전쟁터로 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도합니다. 대중은 우리 정부와 우리 군대가 우리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거친 첫모습을 고국에 보냅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상과 특히 민간인들에게 일어난 잔혹한 행위들을 폭로함으로써 차이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 직업의 역사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첫 종군기자는 <더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입니다. 그는 영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러시아군의 침입에 맞서 싸운 크림전쟁[1853∼1856]을 취재했습니다.
군인들로부터 ‘빌리 러셀’이라고 불린 그는 부적절한 장비 상태와 부상자에 대한 명예롭지 못한 처우, 특히 그들이 본국에 송환됐을 때의 처우, ‘경기병대의 돌격’으로 유명한 영국군의 멍청한 행위가 최고 지휘부의 무능함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 본국에서 대중들의 분노를 크게 폭발시켰습니다. 그의 보도는 전쟁 보도에서의 일대 약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전쟁은 초급 장교들이 언론사에 파견돼 불러주는 방식으로 보도됐습니다.
빌리 러셀은 열린 마음과 망원경, 수첩, 그리고 브랜디 한 병을 가지고 전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 전쟁터로 갈 때, 타자기를 들고 갔고 텔렉스 타전법을 배웠습니다. 최전선에서부터 전화나 텔렉스 기계를 쓰기까지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전쟁 보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성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비디오 카메라와 방탄조끼를 들고 전쟁터로 갑니다. 아프간 서남부에서도 위성전화기 버튼만 누르면 기사는 송고됩니다.
매일 24시간 뉴스가 흘러나오고 블로그와 트위터 메시지가 나오는 시대에 우리 언론인들은 있는 장소가 어디든지 항상 ‘대기중’입니다. 하지만 전쟁 보도는 여전히 동일한 정도로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현장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총에 맞는 현장, 누군가가 당신에게 총을 쏘는 현장에 가지 않고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어려움은, 정부가 됐든 군인들이 됐든 길거리의 사람들이 됐든, 사람들이 우리가 보낸 뉴스가 지면이나 웹사이트, TV화면에 나올 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믿을 만큼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고 있음을 믿기에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일한 위험에 처하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한 운전기사와 통역,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차이를 만들 수도,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최전선의 언론인들 못지않게 진실을 추구하다가 숨진 그들을 기립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신념을 지켰습니다. 우리의 일이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 말입니다.
곽재훈 기자(번역) /프레시안 2012-02-23 오후 2:13:37

READ  [Update] Pennsylvania Coronavirus Map and Case Count | pennsylvania - Pickpeup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223132246§ion=05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감자


นอกจากการดูบทความนี้แล้ว คุณยังสามารถดูข้อมูลที่เป็นประโยชน์อื่นๆ อีกมากมายที่เราให้ไว้ที่นี่: ดูเพิ่มเติม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감자

부모님품을 떠나 원숭이들 손에 길러진 소녀


부모님품을 떠나 원숭이들 손에 길러진 소녀

인간의 몸 속에서 살고 있던 9개의 생명체


인간의 몸 속에서 살고 있던 9개의 생명체

매일 경찰에게 인사하던 소녀. 갑자기 보이지 않자, 집 수사 나선 경찰


약속을 지킨 두 사람
Licensed by Shutterstock, Storyblock
포크포크 웹사이트
http://www.pokepoke.co.kr
포크포크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okepoke.kr
문의
hello@pokepoke.co.kr

매일 경찰에게 인사하던 소녀. 갑자기 보이지 않자, 집 수사 나선 경찰

사고 이후 초능력을 갖게된 사람들


거미한테 물린 뒤로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초능력을 갖게 된
제시카 존스.
평범하던 사람이 갑자기
슈퍼히어로가 되는 이야기,
영화에서만 가능한 거로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영상을 보고
더 깜짝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사고를 당한 이후
엄청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되었거든요.
거미줄을 쏘거나 날아다니는 능력까진 아니지만
그들의 인생을 바꾸기엔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사고 이후 초능력을 갖게된 사람들

นอกจากการดูบทความนี้แล้ว คุณยังสามารถดูข้อมูลที่เป็นประโยชน์อื่นๆ อีกมากมายที่เราให้ไว้ที่นี่: ดูบทความเพิ่มเติมในหมวดหมู่Music of Turkey

ขอบคุณที่รับชมกระทู้ครับ 마리 콜빈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