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갈그미스 전투(고대 세계사의 분수령을 가른 대전쟁) | 고대 전쟁 – Pickpeup

고대 전쟁: คุณกำลังดูกระทู้

1. 갈그미스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

 

고대 헷족속과 수리아 족속의 성읍이었던 갈그미스는 지중해 부근 알렙포(Aleppo)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오늘날의 ‘제라불루스'(Jerablus)이다. 이 성읍은 시리아 지역에서 유프라테스 지역으로 오고가는 관문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이며 교역의 중심지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성읍은 자주 열강의 각축지가 되었는데, BC 15세기경에는 애굽의 왕 투트모스 3세(Tuthmosis Ⅲ)의 치하에 들어갔다가, BC 14세기경에는 힛타이트의 수필룰리우마스 1세(Suppiluliumas Ⅰ)의 치하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BC 1200년경 힛타이트 제국의 멸망과 함께 잠시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존재하다가 BC 8~9세기 경 다시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 그리고 BC 717년 사르곤 2세에 의해 갈그미스는 앗수르에 완전히 병합되어 앗수르의 한 성읍이 되었다. 그후 다시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2세가 앗수르 군대를 격파하고 이 성읍을 차지하게 되었다.

 

2. 당시의 국제 정세

 

갈그미스 전쟁 발발 당시 BC 612년 바벨론에 의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의 함락과 함께 앗수르는 사실상 국가로서 거의 몰락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대신 바벨론이 근동의 북방 지역에서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동의 남방의 강대국인 애굽은 북방의 앗수르가 쇠약해진 틈을 타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동시에, 수도 니느웨 성을 잃고 거의 몰락 상태에 처한 앗수르를 통치하고 있던 앗수르발리트 2세와 동맹을 맺고 바벨론의 남하를 공동 저지코자 하였다.

 

한편 BC 609년에 발발한 유다왕 요시야와 애굽왕 바로느고 간의 므깃도 전투도 갈그미스 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당시 수도 니느웨를 잃고 갈그미스 성읍 중심으로 다시금 세력을 정비하고 있던 앗수르는 바벨론의 집중 공격에 큰 고전을 겪고 있었다. 이에 앗수르가 완전히 붕괴될 경우에 애굽의 운명도 위태하게 될 것을 우려한 애굽왕 바로느고는 앗수르를 원조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을 지나 북쪽 갈그미스 성으로 진군코자 하였다.

 

이때 앗수르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다왕 요시야가 애굽 군대의 진로를 차단코자 므깃도로 나가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유다는 애굽에 크게 패하였고 또 요시야도 전사했다.

 

바로느고의 군대는 갈그미스까지 가서 바벨론과 전투를 개시했으나 싸움은 바벨론의 승리로 돌아갔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전하여 귀국하는 길에 하맛 땅 립나에서 자기에게 나온 여호아하스를 잡아 옥에 가두고 그 형제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하여 왕으로 삼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리하여 유다는 애굽으로부터 잦은 내정 간섭을 받게 되었는데 17대왕 여호아하스가 폐위되고 18대 여호야김이 등극하게 된 것도 애굽의 내정 간섭에 의해서였다.

 

그후 여호야김 4년(BC 605년)에 애굽의 바로느고는 다시 갈그미스로 진격하였으나 갈그미스와 하맛에서 느부갓네살에게 패하였다 1년후 느부갓네살은 팔레스틴으로 내려와 아스글론을 정복하고 애굽 시내에 이르렀다(왕하 24:74). 그리하여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에서 잠시 누렸던 독립을 잃고 당분간 바벨론의 속국 상태로 있었다.

 

여호야김이 3년동안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다가 느부갓네살이 아직도 잠재적인 원수로 남아있는 애굽의 느고를 치기 위해 애굽 국경까지 진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후퇴하게 된다. 여호야김은 그 기회를 이용해 느부갓네살을 배반했다(왕하 24:1).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을 섬겨야할 것을 권면했으나 듣지 않았다(렘 27:1~15). 이 소식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곧 유다 근방에 있는 갈대아 부대와 그 예하에 있는 아람과 모압과 암몬의 부대들을 급파하여 여호야김을 쳤다(왕하 24:2; 렘 35:11). 그리고 그후 얼마동안 아람과 모압과 암몬의 분대들로 보강된 갈대아 부태를 보내서 유다를 다스리게 했다(왕하 24:2; 렘 35:11).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왕위에 올랐다(왕하 24:6, BC 598년 12월- 3개월 10일 동안). 느부갓네살이 다시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을 때(BC 597년 3월 10일)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대신 왕으로 세웠다(왕하 24:1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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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의 경위

 

므깃도에서 유다왕 요시야 군대를 격파한 애굽왕 바로느고는 갈그미스로 진군해 올라가 앗수를 군대를 원조하여 바벨론의 공격을 일시적으로 저지시켰다. 그리고 립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계속해서 바벨론의 공격에 대비하였다(왕하 23:31~34). 그러다가 BC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가 갈그미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앗수르와 애굽 군대를 완전히 전멸시켜 버렸다. 이 당시 애굽 군대의 참패 상황이 렘 46:2~12에서 매우 장엄한 시적 문체로 잘 묘사되어 있다.

 

4. 전쟁의 결과 및 의의

 

이 전쟁에 의해 애굽은 더 이상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왕하 24:7). 그리고 대신에 바벨론이 이 지역에서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제18대, 제19대 유다왕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의해 폐위되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왕위에 앉혀졌다. 그리고 BC 586년 시드기야도 결룩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됨으로써 사실상 남유다는 BC 586년에 이미 BC 722년 멸망한 북이스라엘에 이어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거시기 주석, 구약 이스라엘사, 생명의 삶 Plus 참고)

 

뜻:미슈의 성벽

알레포의 동북 120km지점 유부라데강 오른쪽에 있는 현재의 지에라불스의 한 빈촌.

 

(1) 주전 717년 사르곤 2세에 의해 정복되었다(사10:9).

(2) 주전 604년 애굽 왕 바로느고가 느부갓네살과 싸워 패하였다.

 

☞ 바벨론의 역대기들: 616-539BC까지의 갈대아 왕들의 역대기들은 성경 내용을 실증해 준다. 대영 박물관 번호 21901인 나보플라사르(Nabopolassar)역대기는 616-609BC동안 어떻게 바벨론을 건국했고 어떻게 앗수르 왕국이 붕괴되었으며 수도 니느웨가 멸망했는가를 보인다. 이 역대기는 바벨론이 그의 동맹국들과 함께 612BC에 어떻게 니느웨를 공격했는가를 말하는데, 「아카드왕(The King of Akkad = 나보폴라살의 별명임)은 그의 군대를 소집하였고… 움만만다(메데 혹은 scythians의 왕임)는 티그리스 강둑을 건너고 니느웨를 향해 진격했고 거민을 타파하고…. 포로들을 끌고 갔으며 도시와 성전은 황폐됐다.」고 적고 있다. 그들은 마치 나훔의 예언처럼 불을 질러서 도시를 태웠고, 강물을 끌어들여 홍수를 맞게 하여 성이 황폐되게 했다. (참고: 바벨론과 메데는 연합해서 앗수르를 공격했다). (P. M. Masters, A tour of biblical evidience in British Museum, London, Sword & Trowel, 1983, P.15) 이 역대기의 다른 한 쪽에는 요시야 왕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왕하 23:29와 대하35:20-24와 일치한다. 신흥 바벨론과 메데 연합군에 의한 앗수르 멸망(612BC,) 후, 앗수르의 잔류민들은 앗수르의 서북부 도성인 하란으로 모여서 다시 궐기하여 두 차례에 걸쳐 신흥 바벨론을 대항하여 화란 을 탈환하려 하였다.

 

이때, 이집트의 바로느고는 앗수르가 하란을 바벨론으로부터 재탈환 하는 것을 도우려고 2차례나 시도했는데(신흥 바벨론을 꺽어서 진출을 억제하려고) ① 바벨론 왕 나보폴라사르가 알고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앗수르로 진군해 와서 애굽의 바로느고 군대를 물리쳤고, (이때가 609BC였으며 이때 요시야가 애굽의 바로느고 군대와 맞서다가 전사했음 = 당시 요시야는 반 앗수르적인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망하는 것은 독립을 위하여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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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계산으로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우려는 바로느고를 대항하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왕하23: 29, 30과 대하35: 23, 24를 비교하면 요시야가 죽은 곳이 다르게 설명된다. 후자가 요시야의 죽음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대하 34: 28의 예언의 성취를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즉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그는 다가오는 유다의 재앙을 보기에 앞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요시야의 최후를 자세히 밝힌 것이다). ② 다른 한번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605BC에 다시 바로느고를 저지했고, 그 갈그미스 전투 후 유대에까지 들어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많은 포로를 잡아가게 되는데 그 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끌려갔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나보폴라사르 역대기와 느부갓네살 역대기는 자세하게 언급한다.

 

(참고: 우리 성경의 왕하 23: 29의 “치고자 하여”의 원문 은 “against”뜻만이 아니라 “위하여”(for, on behalf)의 뜻도 된다. 대영 박물관에 있는 바벨론 흙판 연대기(Babylonian clay tablets, 고유번호 21946)의 본문에는 “위하여”라고 되어있다. 어느 해석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는데, “위하여”로 수정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다른 석판(고유번호 22047)에서도 애굽이 바벨론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고유번호 21946에는 애굽이 갈그미스에서 605BC에 바벨론 군대에 망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설명은 “치고자”를 “돕고자”로 고친 것을 전제한 것이다. (cf. John Bright, The Kingdom of God, New York, Abingdon Press, 1592, P.109; P. M. Masters, A tour of biblical evidience in British Museum, London, Sword & Trowel, 1983, P.14; 김희보, 구약이스라엘사, 총신대출판부, 1985, P.391의 각주17)

 

☞ 느부갓네살의 (서판)역대기: 느부갓네살 연대기는 갈그미스 전투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데, 이것에 관한 번역은 1956년에 D. J Wiseman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연대기의 박물관 번호는 21946번이다. 이 역대기의 내용은 「Akkad 왕 (Nabopolassar) 제 21년에 그의 장남이자 왕위를 승계한 느부갓네살은 군대 소집을 하고 이집트 군대를 대항하기 위해 갈그미스로 진군했고… 바벨론 군대는 그들을 완전히 제압했다… 그리고 하티 (Hatti)나라의 모든 지역을 정복했다」라고 한다. 여기서 “하티”란 팔레스틴을 포함하는 것이며 느부갓네살이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1차 침공은 느부갓네살이 이집트를 격퇴하기 위해 갈그미스에 왔다가 아예 유대까지 정복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1차 침공을 받았을 때 유대의 왕은 “여호야김”이었다. 역대기의 내용은 계속 말하기를 “597BC에 그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했으며, 조공을 받고, 보물을 노략했으며,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또한 10,000명 정도의 다른 포로들과 짐승들도 끌고 갔으며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 서판은 여호야긴이 포로된 후 바벨론에서 그의 5아들과 함께 월급을 공급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592BC 날짜로 기름 영수증 3장도 발급했다고 한다.

 

[출처] 갈그미스 전투(고대 세계사의 분수령을 가른 대전쟁) (쌈싸르) |작성자 illsan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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