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스크랩]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Jesus Trail) | 하틴의 뿔 – Pickp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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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Jesus Trail)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걷는 도보순례 여정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여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따라 걷는 순례 여정이다. 아기 예수는 성가정 나자렛에서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며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하게 자랐다.(루카 2, 40 참조)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루카 3,21-22 참조)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루카 4,1-13) 갈릴래아로 가시어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전도를 시작하셨다(루카 4,14-15). 그 후 당신께서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시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희년을 선포하셨다(루카 4,16-30 참조). 화가 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 하자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셨다(루카 4,29-31).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어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회개를 선포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마태 4,12-17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병행구절-마르 1,14-15 ; 루카 4,14-15)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여정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라난 나자렛을 떠나 공생활의 중심지인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으로 나아가는 그 흔적을 더듬으며 걷는 약 65km의 도보순례 여정이다.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은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고 있는 어부인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시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며 제자로 부르시었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또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부르시자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마태 4,18-22; – 마르 1,16-20 ; 루카 5,1-11 참조)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자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고,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다(마태 4,23-25 참조).

 

 

나자렛에서 시작하여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와 관련된 전승이 있는 세포리스, 요한복음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첫 기적의 장소인 카나, 십자군이 살라딘에게 패한 장소인 ‘하틴의 뿔’, 유다의 독립항쟁의 장소였던 아르벨 절벽, 그리고 갈릴래아 호수의 서북쪽에 위치한 탑가와 진복팔단을 거쳐 예수님의 고장 이라고 불리는 공생활의 주 무대인 카파르나움으로 이어지는 순례코스이다.

 

노란색 표시가 나자렛에서 카파르나움으로 이어지는 도보순례 코스이다.

 

 

돌아오는 우회 코스로는 갈릴래아 호수를 일주하여 갈릴래아 호수 최남단에서 사해로 흘러 내려가는 요르단 강을 지나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타볼산을 넘어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절벽”에 떨어뜨리려고 했었다는 ‘낭떠러지 산’을 거쳐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온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여정은 크리스천 성지들뿐만 아니라 무슬림, 유대인 그리고 드루즈인들의 주거지를 아우르는 성지순례 여정이다.

 

역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여정은 이스라엘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유대인 마오즈 이논(Maoz Inon)과 미국인 크리스천인 도보여행 전문가인 다비드 랜디스(David Landis)에 의하여 2007년에 시작되었고 실제적인 코스 표시 작업은 2009년에 이루어졌다.

 

 

 

지저스 트레일은 흰색+오렌지색+흰색의 3줄의 띠 모양으로 돌 위에 표시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트랙킹 코스 등 다른 코스와 연결될 때는 기존의 표시위에 둥근 오렌지색을 추가 하여 표시하였다.

 

 

 

 

 

지저스 트레일 소개 책자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정은 하루 13-19km의 4일 여정으

로 마치 스페인의 ‘깜미노’(Camino de Santiago)처럼 비교적 간단한 차림으로 순례할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① 첫날은 나자렛의 ‘성모영보 대성당’에서 출발하여 ‘세포리스’를 거쳐 ‘카나’에서 여장을 푸는 코스로 총 13.4km의 여정이다. 세포리스 국립공원을 둘러볼 경우 3km를 더 걸어야 하고 최소 2-3시간이 필요하다.

 

나자렛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아랍 도시는 나자렛이다. 천사의 아룀으로 “예”라는 대답을 통해 구세사의 여명을 밝힌 장소인 성모영보성당이 있는 나자렛은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약 7만 명이 살고 있는데 약 2/3가 무슬림이며 1/3이 크리스천이다.

나자렛은 성령으로 인해 아기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메시지를 마리아가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에 등장하는 마을이다(루카 1,26-38 참조).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자렛’은 별 볼일 없는 도시였지만 하느님의 사자인 가브리엘 천사에게 대답한 마리아의 한 마디 대답, ‘예’는 구세주 예수님이 잉태하는 구원의 도시가 되었고, 어린 예수가 자라난 도시가 되었다.

마리아의 집터 위에 지어진 ‘성모영보 대성전’에 들러 목자이신 주님께 길을 인도해주시길 청하며 여정을 시작한다.

 

 

 

 

성모영보 대성당 앞쪽에 나 있는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전통시장에서 여정 표식을 볼 수 있다. 시장 안쪽에는 ‘나자렛 회당’이 있다. 

 

 

황색 둥근 표시가 트레일 코스

 

 

루카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날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어 읽으시고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신다(루카 4,16-30 참조).

 

 

 

언덕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다보면 왼쪽 편에 1860년에 지어진 ‘주님의 식탁(Mensa Christi) 경당’이 나온다. 전승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바위 위에 지어진 아담한 성당이다.

 

 

 

 

 

성모영보 대성당에서부터 능선 정상에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 앞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길은 40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 오르면 땀을 닦으며 나자렛 성모영보 대성당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초반에 힘든 계단 길을 오르고 나면 나머지 세포리까지의 여정은 무난한 여정길이다.

 

 

 

성모영보 대성당을 출발하여 아랍마을을 지나 79번 도로를 지나면 세포리까지는 밭길로 이어지는데 7.8km의 거리이다.

 

 

 

 

 

 

 

 

 

 

 

 

 

세포리스는 갈릴래아의 영주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기원 후 18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 도시를 건설하여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게 헌정하기 전까지는 갈릴래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러므로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따라 어린 예수도 이 길을 걸어 세포리스를 왕래하였을 것이다.

 

 

세포리를 지나면서는 소나무 숲속으로 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면서 아랍마을 마샤드(Mash’had)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지저스 트레킹은 왼쪽 길로 갈라진다. 세포리 근처에서부터 이스라엘 트랙킹 길과 함께 마샤드 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6700명 정도의 무슬림 마을인 마샤드(Mash’had)는 요나 예언자가 태어난 도시라고 한다(2열왕 14,25). 그리고 이 요나 예언자를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요나의 표징’(마태 12,38-42; 마르 8,11-12; 루카 11,29-32)인 요나 예언자와 결부시키고 있다. 보다 널리 알려진 전승에 의하면 요나 예언자의 무덤은 이라크에 있는 니네베 근처라고 하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이곳 마샤드의 이슬람 사원 안에 있다고도 한다.

 

세포리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까지는 5.6km이다. 카나의 첫 기적 성당 왼쪽 길로 들어서면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있다.

 

 

 

카나의 첫 기적의 마을인 ‘카나’ 마을의 전경

 

 

 

 

카나

요한 2,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갈릴래아의 카나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기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는데 포도주가 떨어진 난처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하자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포도주로 변하는 첫 표징을 일으키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곳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요한 2,1-12).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의 카나 가셨을 때 왕실 관리 한 사람이 찾아와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는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치유해 달하고 청하자 두 번째 표징을 보여주신 곳이기도 하다(요한 4,46-54).

 

요한 4,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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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카나는 바르톨로메오라고도 불리는 ‘나타나엘’의 고장이기도 하다.

요한 21,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요한 21,2)

 

예수님께서는 당신 쪽으로 다가오는 나타나엘에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 47)고 말씀하시며 제자로 부르셨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지관구는 비잔틴시대의 폐허위에 1879년 기념 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② 둘째 날 : ‘카나’에서 키부츠 라비(Kibbutz Lavi)까지는 14.4km

여정길은 카나의 첫 기적 기념성당이 있는 마을 뒷산 능선으로 이어지고, 능선부터는 숲길이다. 언덕딜을 따라 내려오면 77번 도로와 나란히 하는 평지 밭길로 이어진다. 77번과 65번이 만나는 골라니 교차로에는 휴게소가 있어 여정에 필요한 물과 간단한 음식들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다. 골라니 교차로 부근에서는 옛 로마인들의 도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밭길을 따라 걷다보면 묘지와 유대인 학살 기념비가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키부츠 라비이다. 키부츠 라비에는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호텔이 있으며, 키부츠 인근에 있는 ‘하틴의 뿔 언덕’ 주위로는 넓은 평야지대가 있어 목축과 농사를 짓고 있다.

 

 

 

 

 

 

 

 

 

 

 

키부츠 라비는 1949년에 영국에서 이주해 온 정통파 유대인들이 시작한 키부츠로 토라 테이블이나 신자석과 같은 시나고가에서 사용하는 가구들을 만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이다.

 

③ 셋째 날 : ‘키부츠 라비’에서 모샤브 아르벨까지는 15.7km

키부츠 라비에서 모샤브 아르벨로 이어지는 코스는 지저스 트레일 중에서 가장 쾌적한 코스이다. 그리 높지 않는 능선과 계곡을 지나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첫째 날은 대부분 아랍 마을을 지나는 코스이고, 두 번째 날은 산을 넘어 밭길을 따라 걷는 길이라면 셋째 날은 하틴의 뿔 언덕을 넘어 계곡을 지나는 전망이 좋은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1099년 고드 프레이에 의해 수복된 예루살렘은 십자군에 의하여 라틴왕국이 들어선다. 그러나 겨우 90년이 되지 않는 1187년에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다시 무슬림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 비운의 전쟁터가 갈릴래아 서북쪽에 있는 ‘하틴의 뿔 언덕’이다. 하틴의 뿔 언덕에 서면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의 드넓은 평원과 요르단 강, 아르벨 절벽, 갈릴래아 호수와 골란고원 등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틴의 뿔 언덕 아래쪽에는 드루즈파의 예언자 슈에입(Shu’eib) 성지가 있다. 키부츠 라비에서 예언자 슈에입 성지까지는 6.1km이다.

아르벨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절벽 옆으로 난 언덕을 오르면 큰 길이 나오고 농경지 안에 아담한 아르벨 모샤브에서 여정은 끝난다.

 

 

 

 

 

 

 

 

 

 

 

 

 

 

 

 

 

 

 

하틴의 뿔(Horns of Hattin)

하틴의 뿔은 황소의 뿔을 닮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쌍둥이 사화산 봉우리이다. 티베리아에서 6km 떨어져 있는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전 여정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제공해 주고 있다. 맑은 날에는 아르벨 절벽과 갈릴래아 호수 남단과 저 멀리 북쪽에 있는 헤르몬산 그리고 나자렛 서쪽 편을 볼 수 있다.

하틴의 뿔 바로 아래쪽 평야지대에서는 아이유브 왕조(Ayyubid Dynasty)의 살라딘(Saladin)과 십자군이 1187년 7월 결정적인 전투를 치룬 장소이다.

십자군은 아코에 1200명의 기사와 1만 명이 넘는 보병 그리고 다양한 용병들이 모였다. 살라딘은 십자군을 그들의 튼튼한 요새에서 유인해 내기 위해 귀족인 라이문도의 아내가 살고 있는 티베리아를 포위하였다. 그러자 십자군은 올가미에 걸려들었고 그들의 군대를 세포리 동쪽에 주둔시키게 된다. 라이문도(Raymond)와 귀(Guy)가 이끄는 십자군은 세포리를 출발하여 티베리아쪽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상수원이 있는 지금의 골라니 교차로 근처에 있는 투란(Tur’an)을 지나쳐 갔다. 십자군은 물이 있는 이곳에서 야영하지 않고 무리해서 늦게까지 티베리아를 향해서 행군해 나갔다.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살라딘은 티베리아를 점령한 후 두 개의 여단을 십자군 쪽으로 보내어 그들의 퇴로와 상수원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였다. 십자군은 고원지대에 야영하도록 몰렸고 물과 보급로 그리고 지원군이 차단된 채 살라딘 군대에 의해 포위 되었다.

1187년 7월 4일 아침, 십자군들은 야영지 주위로 타오르는 불에 의한 자욱한 연기에 눈이 가려 깨어났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십자군들은 살라딘에게 투항하거나 도망쳤다.

 

귀와 라이문도는 살라딘 앞으로 끌려갔고, 귀 왕은 살라딘이 주는 물을 받아 마셨지만 라이문도는 물을 거부하면서 말하기를 전쟁이 다른 식으로 전개 되었다면 살라딘의 목을 벨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격분한 살라딘은 가지고 있던 검으로 라이문도를 찌르고 목을 벤 후 그의 목을 다마스커스로 보냈다.

무슬림 군대는 이 결정적인 전투로 제2차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살라딘 군대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된다.

살라딘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언덕위에 돔을 세웠지만 독일의 한 순례자의 증언에 의하면 1217년에 이미 폐허가 된 모습으로 전해진다. 1948년 이전에는 언덕 아래에 아랍 마을이 있었다. 1976년과 1981년에 발굴작업이 있었다.

 

 

④ 모샤브 아르벨에서 참행복 선언 성당을 거쳐 카파르나움까지는 18.8km이다.

마지막 여정은 모샤브 아르벨에서 탑가와 진복팔단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카파르나움에 이르는 여정이다.

소개책자에서는 아르벨 산에서 빵의 기적 성당까지 과수원 길을 지나가는 코스로 안내하고 있는데 두 지점 사이에 있는 중요한 장소를 놓치는 것 같아 아쉽다. 과수원 길을 따라 걷게 되면 어느 정도 한적한 길을 걷는 이점은 있으나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적지인 ‘미그달’과 예수님 시대의 고기잡이배를 복원해 놓은 키부츠 기노사르(Kibbutz Ginosar)를 놓치게 된다.

 

 

아르벨 산(Mt. Arbel)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는 아르벨 국립공원은 기원전 759년에 지진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절벽이다. 아르벨 산은 1967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81m, 절벽은 지표면에서 380m 높이에 있다. 아르벨산은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는 도중 미그달 근처에서 왼쪽으로 바라보이는 깎아 지르는 높은 절벽이다.

절벽 위에 서면 갈릴래아 호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며 맑은 날에는 갈릴리 호수를 포함하여 티베리아, 사페드(Safed), 갈릴래아 호수의 북동쪽 해안에서 골란고원 쪽 그리고 헤르몬산의 봉우리를 볼 수 있다. 특별히 마리아 막달레나(막달레나 마을의 마리아란 뜻)가 살았던 현재 발굴 중에 있는 ‘미그달’ 유적지가 지척에 내려다보이고 호수 해안선을 따라 저 멀리 진복팔단 산과 탑가 그리고 카파르나움 성지가 굽어보인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여정의 종착지인 예수님의 공생활의 주요 무대인 카파르나움이 한 눈에 펼쳐 보이는 전망대이다.

 

절벽에는 동굴요새가 있으며 인근모샤브 근처에는 4세기의 시나고가 유적지를 볼 수 있다. 아르벨 낭떠러지와 모샤브 사이에 있는 고대 아르벨 시나고가는 고대 아르벨 정착촌의 일부로서 4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고대 도시 아르벨에는 기원전 2세기부터 8세기까지 사람들이 살던 주거지였으며 유대 현인인 니타이(Nitai)의 고향이었다. 하트모양의 이중 기둥의 기록에는 출입구와 예루살렘을 향한 계약의 궤와 토라 두루마리가 놓여 있던 벽감이 새겨져 있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유대인들이 정결례 예식에 사용하던 미크베 시설과 물 저장소 등 수많은 동굴들을 볼 수 있다.

이 동굴들에서는 16-17세기에 드루즈파 사람들이 왕궁처럼 사용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요세푸스 플라비우스가 유대 전쟁사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헤로데 대왕과 관련해서 극적인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발굴 작업중에 있는 ‘막달라’ 유적지

 

 

아래 사진 중 왼쪽에 쭉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카파르나움’으로 이어진다.

 

 

 

 

 

 

 

 

 

 

 

 

 

 

 

 

 

 

 

 

 

 

 

 

문헌에 의하면 아르벨 절벽의 동굴 집들은 2차성전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요셉푸스는 아르벨산 절벽의 동굴 집에는 로마의 정복자들에게 대항하는 반란군들이 살았다고 전한다. 헤로데는 동굴 안에 숨어 있는 하스모니안 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커다란 바구니에 병사들을 담아 내려서 반란군들을 끌어내 떨어트려 죽였다. 그리고는 동굴들을 불태워버렸다.

아르벨 계곡 아래에 있는 마을은 ‘비둘기들의 계곡’이라고 부르는 베두인 마을 와디 하맘(Wadi Hamam)이다. 아르벨 국립공원은 여름에는 8am-5pm, 겨울에는 8am-4pm까지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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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즈(Druze)파 

‘네비 슈에입’은 하틴의 뿔 언덕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드루즈파의 사원이다.

드루즈파는 ‘하킴’(Hakim, 996-1021 재위)을 성스러운 화신으로 믿고 있는 중동지역의 군소종파이다. 하킴은 996년 칼리프의 칭호를 받은 이슬람 시아파인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6대 통치자로 괴이하고 잔인한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뿐만 아니라 수니파 이슬람까지 박해를 하였다. 하킴의 통치에 고통을 받고 있던 이들이 봉기하자 정권은 몰락하게 되지만 그를 따르던 이들이 카이로를 탈출하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로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이들이 드루즈 교도들이다.

드루즈파 신앙은 시아파 내의 급진 세력인 이스마일파의 가르침에서 발전했는데 유대교,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신플라톤주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들이 결합해 엄격한 일신교의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유일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무와히둔’(muwahhind)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절충적인 신앙 체계는 하킴을 구세주로 믿는 교의로 체계화 되었고 1017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하킴은 밤중에 산책하다가 사라졌는데 이들은 하킴이 죽지 않고 사라졌으며 어느 날 성스러운 화신으로서 돌아와 황금시대를 개창할 것이라고 믿는다.

교단의 이름은 부하인 ‘다라지’(Darazi)에서 따 온 것이다. 이슬람의 시아파에서 갈라져나온 이단적 분파이지만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소수 지도자들 간의 결속과 충성이 특징적이다. 1000년의 역사 속에서도 긴밀한 동질성과 독특한 신앙을 유지해 올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종교체계가 외부 세계는 물론 자신들 교도들 사이에서도 부분적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은폐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 종교에 관한 어떤 지식들은 신앙심 깊은 특정한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전수된다. 이렇게 드루즈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전통과 풍습을 철저히 베일에 가려 보존해 왔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드루즈파의 종교와 관습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드루즈파는 이슬람과 같은 언어인 아랍어를 사용하고 코란을 읽으며 생활방식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슬람에서 강조하는 다섯 번의 기도와 자선, 단식, 성지순례 등 예식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드루즈파는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사상을 믿기 때문에 타 종교로의 개종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 종파로의 개종도 인정하지 않는다. 드루즈교로 태어난 사람만이 드루즈교 신도가 될 수 있으며 다른 종족과 결혼하지도 않는다. 또한 박해 상황에서 생명이 위태롭게 되면 겉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교리적으로 허용된 것도 오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드루즈파에서는 이슬람의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보지 않으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을 중요한 예언자로 섬긴다. 그 중에서도 모세의 장인인 ‘이트로’(탈출 3,1)를 매우 중요한 예언자로 섬기고 있다. 드루즈파에서는 이트로가 정의와 공정 그리고 모세에게 일신교를 전해주었다고 믿는다.

탈출 3,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하틴의 뿔 아래에 있는 ‘네비 슈에입’ 사원은 전승에 의하면 ‘이트로’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거대한 복합건물은 드루즈파의 회합을 위한 장소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4월 25일은 이들에게 특별한 순례일로서 함께 모이며 모든 사람들을 환대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무덤에 있는 비명에는 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행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장소는 11세기부터 거룩한 성지로 언급되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1880년에 지어진 것들인데 최근 대대적인 재건축을 하였다. 인상 깊은 샹들리에는 다마스커스에서 온 순례자가 가져온 것이 있다.

 

드루즈파는 시리아(40-50%)와 레바논(30-40%), 이스라엘(6-7%)과 요르단(1-2%)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드루즈파는 대부분이 갈릴래아 지역(81%), 하이파(19%)와 골란고원 지역에서 약 2만 정도가 살고 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드루즈파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서 싸워 이스라엘을 지킨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민으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 이들은 이스라엘 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리아 지역에서 살고 있던 드루즈파 사람들의 상황은 다르다. 1967년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1981년에 이스라엘 법에 따라 정식으로 합병되면서 이곳에 살던 드루즈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젠가는 시리아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스라엘 군에 입대하지도,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고 있다.

특별히 헤르몬산의 중턱에 있는 마을인 아랍어로 ‘태양의 탑’을 의미하는 ‘마그달 알-샴스’(Majdal al-Shams)에 살고 있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분단의 아픔이 살아 있는 독특한 드루즈 마을이다. 산악 마을인 이 마을은 시리아의 드루즈인들이 살던 마을이었는데 6일 전쟁 때 시리아 쪽과 이스라엘 쪽으로 마을이 나뉘어 졌다. 이들은 장벽 너머에 있는 친지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언덕에 올라 서로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고함의 언덕’이라고도 한다.

 

드루즈 사람들은 외모에서 구분을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하얀 터번을 쓰고 크고 부풀어 오른 오트만 시대의 바지를 입고 있다. 여자들은 하얀 천으로 머리를 가린다.

 

 

‘네비 슈에입’ 아래쪽에는 외롭게 홀로 서 있는 거의 쓰러져 가고 있는 모스크의 탑이 서 있어 오래전에 아랍 마을이 있었던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전쟁이 있었던 1948년까지만 해도 400여 가구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파괴되고 이슬람 사원의 흔적만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이슬람 사원 자락에는 지금도 시원하게 흘러 나오는 샘이 있어 풍요로웠던 마을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폐허가 된 하틴(hittin)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상속 재산으로 분배하면서 납탈리 지파에게 분배한 땅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나안 시대의 요새가 있었던 성읍 ‘치띰’(Zittim)일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3세기부터 ‘크파르 하팀(Kfar Hattim)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호 19,35 (납탈리 지파의 영토) 그리고 요새 성읍은 치띰, 체르, 함맛, 라캇, 킨네렛,

 

이곳은 이슬람 시대에는 탁월한 무슬림 지도자들을 배출한 고장이라고 무슬림 작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오트만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하틴은 와디 함만으로부터 흐르는 샘으로 물이 풍부하여 올리브나무와 무화과, 감귤류 등이 풍부한 매우 기름진 땅이라고 알려졌다. 그리고 이 마을은 네비 슈에입으로 오는 순례자들이 머무는 유명한 장소였다.

 

‘네비 슈에입’에서 전원 풍경이 어우러지는 계곡을 따라 2.8km 정도 내려가다가 폐허가 된 건물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급경사 길을 오르면 포장도로가 나온다. 아르벨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에 이르기 조금전 오른쪽에 옛 시나고그 유적지가 나오고 근처 아르벨 모샤브에 순례자 숙소가 있어 여장을 풀 수 있다. 네비 슈에입에서부터 아르벨까지는 약 9.6km이다

 

 

막달라(Magdala)

티베리아 시내에서 90번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약 6km 가다보면 ‘미그달’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미그달에서 해안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왼쪽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향이 나온다. 고고학 발굴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12번 언급되고 있는데(마태 27,56; 27,61; 28,1; 마르 15,40; 15,47; 16,1; 16,9; 루카 8,2; 24,10; 요한 19,25; 20,1; 20,18) 이것은 ‘막달라’ 마을 출신의 마리아란 뜻이다. 막달라는 그리스어 지명이며 히브리어로는 ‘미그달’(migdal)로 ‘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염색자의 탑에서 유래하는 도시로 호숫가에 있었기 때문에 염색업, 어업 그리고 특별히 생선을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나서 소금에 절인 생선을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멀리 알렉산드리아, 로마에까지도 수출하였다고 한다. 유대 독립 전쟁 때 67년 티투스(Titus)에게 점령되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이 갈릴래아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두루 다니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일곱 마귀’를 쫓아내준 치유를 받고(루카 8,1-3)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를 따르며 예수님의 일행을 시중들었으며(마르 15,40-41),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수난 여정의 마지막에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임종과 장례를 지켜보았으며(마르 15,40-47) 안식일 다음날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은 여인이었다(마르 16,1-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첫 증인이요 증거자로 언급하고 있다.

요한 20: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마르 16:9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께서 일찍이 일곱 마귀를 쫓아내어 주셨던 여자였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알린 ‘사도들 중의 사도’로 초세기부터 공경되었다.

 

 

예수님의 배(갈릴래아 호수의 배)

 

아르벨 절벽에서 내려 온 후 예수의 발자취를 따른 여정길을 ‘미그달’에서 벗어나 카파르나움 방향으로 90번 도로를 따라 파란색 트렉킹 길을 약 2km 걸으면 ‘기노사르’(Ginosar) 키부츠에 이른다. 기노사르 키부츠는 갈릴래아 호수의 북서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갈릴래아 호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겐네사렛(Gennesaret)으로도 불러졌다(1마카 11,67; 마태 14,34; 마르 6,53; 루카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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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5,1-3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기노사르 키부츠는 1937년 푸림절 전야에 젊은이들이 주축이된 사회주의 단체가 인근 미그달의 정착촌을 임대하면서 설립되었다. 이곳은 이갈 알론(Yigal Allo, 1818-80, 팔마군 사령관. 정치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기노사르 키부츠는 원래 농사를 짓는 키부츠였지만 ‘예수님의 배’(Jesus Boat)라고 불리는 ‘갈릴래아 호수의 배’가 발견되면서 지금은 관광수입이 주 수입원이 되었다.

 

 

 

 

 

 

 

 

 

 

 

 

 

 

 

기노사르 키부츠에 사는 모세(Moshe)와 유발 루판(Yuval Lufan) 형제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기잡이를 하면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언젠가는 고대에 사용했던 배의 유물을 발굴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6년 심한 가뭄으로 호수의 수위가 한참 줄어들었을 때 물이 빠진 호숫가를 걷다가 드러난 배의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을 당국에 보고하였고, 탐사를 위하여 고고학자들이 파견되었다.

 

발굴 작업은 이스라엘 고대유물을 담당하는 기관과 기노사르 키부츠 사람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배 안에는 금이 가득 들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밤낮으로 보초를 서야 했으며, 배를 파손하지 않고 진흙 속에서 물이 다시 차오르기 전에 발굴해 내는 작업은 12일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다. 발굴 작업을 하면서 유물이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 위에 특별한 구조물을 만들었고, 진흙을 제거한 후 배는 폴리우레탄 거품으로 감싼 후 조립 시설로 옮겨졌다. 발굴된 배는 기노사르 키부츠에 있는 이갈 알론 박물관(Yigal Allon)에 전시되기 전에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7년간 화학용액 통에 담겨 있었다.

 

 

 

 

 

 

 

 

 

배에 사용된 나무의 종류를 보여주는 도면

 

 

 

 

 

모자이크에서 언급하고 있는 갈릴래아 호수의 배

 

 

 

 

 

 

 

 

 

 

폴리우레탄 거품으로 배를 감싼 후 진흙에서부터 들어 올리는 발굴 작업 사진

 

예수님의 배가 전시된 이갈 알론 박물관

 

근세기의 갈릴래아 호수의 고기배

 

방사능 원소 측정에 의하면 배는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 후 70년경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기원전 50년에서 기원후 50년경 사이의 요리용 항아리나 등잔 등의 도자기류들과 배를 건조하면서 사용되었던 못이 배 안에서 발견되었다. 배는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의 기간에 지중해 지역에서 만든 배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배는 삼나무 널빤지를 서로 결합하는 식으로 만들어졌고 고기잡이를 하는 동안 물이 얕은 해안가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배의 아래쪽은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다. 배는 4명이 각기 다른 노를 저을 수 있고 항해할 때 돛대를 달 수 있는 구조이다. 배의 크기는 8.2m 길이, 2.3m 폭 그리고 1.2m의 높이를 하고 있다. 배는 12개의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로 구성되어 있는데 낡은 배를 반복적으로 수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기잡이와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배는 반복적으로 수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 세기가 넘는 동안 사용되다가 더 이상 수리하여 사용할 수 없는 때가 되자 사용할 수 있는 나무들을 떼어낸 후 배를 호수에 가라앉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배는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덕분에 부식되지 않고 약 2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 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발굴된 배는 1세기에 호수를 가로지르고 고기잡이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배의 유형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배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오로지 성경과 문헌에서 언급하는 것이 전부였고 고고학 발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에 의한 것으로 배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배가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증거는 없지만 갈릴래아 호수의 ‘배’는 복음서에서 50여 번 언급될 정도로 예수님의 생애와 공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예수님 시대의 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하다.

 

갈릴래아 호수의 배는 기노사르 키부츠 안에 있는 이갈 알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토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리고 금요일은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2010년 9월 26일 주일 아침 창미사 후 텔아비브로 가는 합승버스를 타고, 다시 나자렛으로 가는 합승버스로 바꿔 타고 성모영보 대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쯤이었다. 성당에 들러 시작기도를 하고 걷기 시작하여 첫날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기적의 성당이 있는 카나 성당을 지나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산 능선 숲에서 1박을 했고, 그 다음 ‘하틴의 뿔 언덕’을 지나 아르벨 계곡에서 야영을 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미그달에 도착해서 여정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2011년 4월 3일, 이번엔 티베리아 시내에서 내려 티베리아에서부터 갈릴래아 호수를 끼고 미그달 → 키부츠 기노사르 입구에서 야영, → 빵의 기적 성당 → 탑가 → 카파르나움과 정교회 카파르나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카파르나움 국립공원에서 야영하면서 일정을 마쳤다.

 

티베리아 호수가

 

 

 

 

 

 

 

 

 

참행복 선언 성당과 빵의 기적 성당,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

 

 

 

빵의 기적 성당

 

 

 

 

 

 

베드로 수위권 성당

 

 

 

 

 

카파르나움 성당

 

 

 

 

 

 

 

 

그리스 정교회 카파르나움 성당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

순례의 노래 128,1

출처 : 성지 이스라엘

글쓴이 : 테오필로 원글보기

: 테오필로

메모 :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찾아봅니다.


에이지오브엠파이어2 결정판 캠페인 #124 (아프리카) 살라딘 – 하틴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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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썬더] \”이스라엘\” 공개 | 코코볼 하복 | 도저 추가된 MBT | 3차 데브 알아보기


워썬더 WarThunder WarThunderDEV
우리 데브 또 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골드 항공기가 선행 공개되며
이후 패치에 남은 트리 패치가 진행됩니다!
타임라인
0:00 ~ 00:30 지상전 신맵 아랄해
00:36 ~ 1:14 120mm 이상 주포로 생기는 포탄 구덩이
1:42 ~ 2:55 HC, 2A4, 1A5. 붐3, 흐리잔테마, 아맥스 등등 도저 받은 전차
2:56 ~ 3:16 그나마 괜찮아진 흙 그래픽
3:17 ~ 3:33 몇몇 전차는 도저에 장갑이 생김
3:34 ~ 5:15 신규 도저 받은 전차들 도저 작동
5:16 ~ 5:51 흙더미 관통 실험
5:52 ~ 6:23 프랑스 프리미엄 AD4
6:24 ~ 7:26 이스라엘 프리미엄 스핏파이어
7:27 ~ 8:41 이스라엘 프리미엄 A4E 후기형
8:42 ~ 10:54 MI28NM 코코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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